‘잘 있거라 나는 간다~대전발 0시 50분~’
이런 노래 아시나요?
추억의 대중가요 ‘대전 부르스’를 모티브로 한
대전 0시축제가 8월 11일, 대전 중구 중앙로 일원에서 시작됩니다.
‘대전 0시 축제’는 ‘잘 있거라 나는 간다~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추억의 대중가요 ‘대전 부르스’를 모티브로 한 축제입니다. 대전이 가진 모든 재미를 꺼지지 않게 지속시킨다는 의미의 ‘잠들지 않는 대전, 꺼지지 않는 재미’로 축제의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졌다고 합니다.
대전 0시 축제는 ‘시간여행 축제’라는 차별화된 주제를 바탕으로 대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존(zone)으로 나눠 진행됩니다.
이 글에서는 대전의 과거를 교통/경부선과 호남선, 행정/도청이전, 인구/둔산신도시의 개발, 구도심과 신도심 분리, 3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보려합니다.
대전은 1905년 경부선 대전역 개통과 함께 일본인이 대전천과 대동천의 합류 지점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발전을 시작하였습니다. 1912년 대전역과 공주도청 사이로 신작로가 개설되었고 이때 목척교가 가설되었습니다.
1914년 호남선 철도의 개통으로 교통의 요지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의 동구 원동, 정동, 천동, 효동, 삼성동을 중심으로 정미, 제사, 방적, 피혁 공업등의 경공업이 발전하였습니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을 함으로써 충청권 행정의 중심이 되었으며 도시가 목척교를 건너 용두동 구릉지대까지 확대되었습니다. 1915년 6,061명이던 인구가 도청 이전 당시에는 6배로 늘어서 33,843명에 달하였고 또한, 1936년 서대전역이 개설되면서 더 서쪽으로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대전광역시의 역사 (2017년 8월 3일 접속))
대전이 역사가 긴 도시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물이 구도심에 자리하고 있어 문화재 보전 사업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충청남도 도청건물이 현재 도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근대문화유산 등록 문화재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그 외에도 일제 강점기에 관사로 사용된 충남지사공관, 은행동 중심에 있는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건물도 건축학에서는 의미있는 건축물로 꼽힌다고 합니다.
해방후 1949년 대전부에서 대전시로 개칭하였으며 해외동포가 돌아와 대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서울에서 피난 온 임시 정부가 대전에 잠시 머물렀으며,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대전 전투가 벌어졌었습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월남 피난민이 대거 유입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하여 농촌인구가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대전의 구역은 계속 넓어져서 1963년 유천동과 회덕 그리고 산내까지 대전시로 편입되었습니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가 개발되어 서울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이전을 해 옴에 따라 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85년 둔산신도시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1998년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1999년 시청의 둔산 신도심 이동으로 대전역을 중심으로하는 구도심과 신도심이 분리되었습니다.
둔산신도시의 개발 및 행정기관의 이전으로 행정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일하게 되는 관련 업종도 함께 이동하게 되었고, 주택이 많았던 구도심과는 달리 편리함을 강조한 신도시의 아파트로 주거지 또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학교의 신설, 학원가 형성, 은행, 금융권의 이동까지 연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논밭이 대부분이었던 둔산지역으로 인구이동이 이루어지자 구도심의 인구는 줄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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